제주에 유배 온 추사 김정희선생의 아픔인 유배이야기와 예술혼에 대해 알아보고 소중한 역사 한 페이지를 돌아보며 세한도에 대한 얘기도 같이 해보겠습니다.
추사 김정희 유배 이야기
한국 역사에서 김정희선생의 제주도 추사 유배 이야기는 회복력과 흔들리지 않는 결단력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이 장은 역경과 투쟁의 시기에 빛을 비추지만, 역경에 맞서는 인간 정신의 힘도 조명합니다. 김정희선생의 제주 추사 유배 여정은 위험과 불확실성으로 가득 차 있었다. 김정희선생은 정치적 박해를 피해 18세기말 외딴섬으로 유배되었습니다. 본토와 단절된 김정희선생은 생존이 보장되지 않는 혹독하고 험난한 풍경을 선사했습니다. 그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추사 김정희선생의 결심은 흔들리지 않고 생존과 구원의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추사 유배생활은 고난과 궁핍으로 점철되었습니다. 김정희선생은 혹독한 기상 조건부터 자원 부족까지 수많은 어려움에 직면했습니다. 그러나 그 역경 속에서도 김정희선생은 섬의 험난한 지형에서 생계를 이어나가는 놀라운 회복력을 보였습니다. 순수한 결단력과 지략을 통해 그는 지역 사회와의 관계를 구축하고 존경을 받으며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그의 흔들리지 않는 정신과 불굴의 의지는 그에게 쌓인 역경을 극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유배 기간 동안 겪은 고난에도 불구하고 김정희선생의 유산은 이후에도 지속되었습니다. 그의 회복력과 결단력은 역경을 극복하는 인간 능력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더욱이 김정희선생의 망명은 변화의 촉매제가 되었고, 미래 세대가 불의와 억압에 맞서 싸울 수 있도록 영감을 주었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회복력의 힘과 침묵을 거부하는 사람들의 지속적인 유산을 가슴 아프게 상기시켜 줍니다. 김정희선생의 제주도 추사 유배 이야기는 역경에 맞서 인간 정신이 승리했다는 증거이다. 그의 회복력과 결단력을 통해 김정희선생은 극복할 수 없을 것 같은 역경을 극복하고 계속해서 세대에게 영감을 주는 유산을 남겼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가장 암울한 시기에도 지속적인 희망의 힘과 인내하려는 불굴의 의지를 가슴 아프게 상기시켜 줍니다.
김정희선생의 대표 추사체와 세한도
김정희선생은 55세에 세도 가문인 안동 김 씨의 미움을 사게 되어 이곳 서귀포시 대정읍 보성리에 위치한 마을에서 8년 3개월의 유배생활을 보냈으며 그 생활 중에 김정희 선생의 대표 서체인 추사체를 완성하였고 국보 180호인 <세한도>를 남겼습니다.
당대 최고의 유학자이자 위대한 예술가로 명문가의 배경과 뛰어난 실력을 바탕으로 서예와 금석학 및 고증학의 대가였던 그의 인생에 어둠이 드리워지는 순간이었습니다.
한양에서 가장 먼 제주의 대정현으로 유배를 오게 된 추사 김정희선생은 위리안치(집 울타리 밖으로 나갈 수 없는 벌) 형을 받게 되었고 제주도가 육지의 음식, 풍습, 언어도 달랐기 때문에 거의 외국으로의 유배나 다름없던 곳입니다.
추사 김정희선생 역시 제주에서 낯선 풍토와 입에 맞지 않는 음식, 그리고 잦은 질병으로 고생하였는 데 무엇보다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외로움이었을 것입니다.
편지를 통해 가족에게 위로를 받았다고 합니다.
제주도 바굼지오름이란 단산을 보며 추사체가 탄생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외롭고 고독한 자신의 처지를 잘 표현한 세한도를 그려내게 됩니다.
국보 180호인 세한도는 추사 김정희 선생이 제자 이상적에게 선물한 그림입니다.
권력에 밀려 제주 대정현으로 유배를 온 스승을 위해 중국연경의 소식과 귀중한 서책들을 구해서 제주로 틈틈이 공수한 제자를 위해 감사한 마음을 담아 그린 그림입니다.
그림과 함께 쓰여 있는 글 중 한겨울 추운 날씨가 되어서야 소나무, 측백나무가 비로소 시들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는 문구는 유배 온 자신에게 끝까지 지조를 지키는 제자의 모습을 칭송하면서 한편 , 나이 든 자신의 외로움을 너무도 잘 표현한 문구입니다.
또한, 유배생활을 하며 글을 모르는 마을 주민들에게 글도 가르쳤다고 합니다.
김정희선생의 친구였던 의선사가 있는 대흥사에 써주었던 무량수각 현판과 수선화를 그린 추사의 작품 외에도 추사의 글씨와 그림들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추사관에서는 추사 김정희 선생의 유배생활과 여러 작품들 뿐만 아니라 제주의 옛 생활 문화 및 민속문화를 함께 보며 배움을 얻어갈 수 있는 제주 추사적거지에 가셔서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 신 것도 제주여행의 좋은 힐링포인트가 될 것입니다.
제주 추사관
제주 추사관은 조선후기 대학자이자 예술가인 추사 김정희 선생의 삶과 학문 예술세계를 기리기 위해 지난 2010년 5월 건립되었습니다. 제주 추사관의 전신은 1984년 제주지역 예술인들과 제주사 연구자들의 노력으로 건립된 추사유물전시관입니다. 그러나, 전시관이 낡기도 하고 해서 2007년 10월 추사유배지가 국가지정문화재로 승격되면서 그 격에 맞게 재건립되어야 한다는 여론에 따라 새롭게 제주추사관을 완공하였습니다.
제주 추사관은 주 전시공간을 지하로 배치, 큰 규모를 숨겨 대정현성 등 주변의 풍경과 조화되도록 하였으며, 지상에는 가장 단순하고 명료한 건축물로 추사 김정희 유배생활이 고독한 풍경을 조성하여 본질만 남은 추사체의 흔적으로 표현하였습니다. 추사관 진입로는 다소 가파른 경사를 가져 이곳을 내려가는 관람객도 추사의 절박함을 조금이라도 느끼며, 그로 인해 유발된 긴장감은 스스로를 다시 깨닫게 하는 계기가 되었음 하는 건축학 승효상 님의 바람도 설명되어 있습니다.
김정희선생의 칠언시 <수선화>
"한 점의 겨울마음 송이송이 둥글어라
그윽하고 담담하고 냉철하고 빼어났네
매화가 높다지만 뜨락을 못 면했는데
맑은 물에 해탈한 신선을 보겠구려"
"꽃망울 노랗게 터지고 조밀한 잎 파릇이 피어나면 고운 바람에 황금이 어리네"
제주 추사관을 관람하고고 나오면 많은 여운이 남습니다.